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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트위터로 세상 읽기] '점 선 면 그리고 정체성이 결여된 위험한 권력'
등록일 : 2011-04-07

점선면 그리고 정체성이 결여된 위험한 권력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라는 러시아 출신의 화가가 있다. 추상주의 회화의 선구자로서 그 유명한 바우하우스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그는 그림에 있어서 모든 외적인 요건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조형적 요소로만 미(美)를 추구하고자 노력한 사람이었다. 창작의 과정을 통해 모든 형태를 지속적으로 간결화 시켜가던 그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것은 바로 점과 선 그리고 면이었다. 그의 결론에 따르면 점 선 면은 모든 조형과 미술의 기본이자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칸딘스키는 점이란 모든 조형과 미술 요소의 시작점 즉, 제로 상태이며, 작가가 표현하고자 창작에너지의 응축된 세계라고 표현했다. 또한 선은 점을 움직여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면은 어려 선이 모여서 만들어진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뜬금없는 미술이론을 들먹이는 것은 인간의 삶, 특히 권력이 존재하는 조직에서 칸딘스키의 이론을 적용하면 설명하지 못했던 여러 기현상들과 조직의 이상적 기능들이 보다 쉽게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무릎을 꿇었다. 지난 3월 3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통성기도를 하며 대통령은 그의 신 앞에 수분 동안 무릎을 꿇었다.
신문과 방송에서 무릎 꿇은 대통령의 사진이 보도되자 트위터는 들썩거렸다. 많은 트위터리안들은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라도 한 줄 알았다거나, 우리의 대통령이 언제 국민 앞에 저리도 겸허했던 적이 있었냐며 ‘보기 좋더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이처럼 ‘무릎 꿇은 대통령’에 대한 트위터의 반응은 부정적인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일부는 ‘국가조찬기도회’가 아니라 ‘국가조진기도회’라며 냉소를 퍼붓기도 했다.
대통령은 개인이 아니라 그 자체로 국가 최고 기관이다. 대한민국과 국민을 대표하는 최고 권력인 것이다. 대통령 역시 국민 누구나처럼 개인으로서는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하지만 국가기관으로서 참석한 자리에서 개인의 종교적 가치관을 서슴없이 행동으로 표현한 것은 영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이는 정교분리를 정의하고 있는 헌법 제 20조 2항을 가벼이 여긴 행위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국가조찬기도회’라는 것은 과거 군사정부 시절 총칼 앞세운 정권에 아부하기 위해 일부 정치적인 종교인들이 만든, 사라져야할 구태이다. ‘무릎 꿇은 대통령’해프닝을 통해 순간이나마 정체성을 상실한 권력과, 권력에 대해 비판을 넘어 냉소적인 구성원 사이에 결여된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자면… 모든 조직에서 점은 최고 권력자임과 동시에 구성원 개개인이다. 국가로 따지자면 대통령과 국민 모두가 같은 점인 것이다. 대통령과 국민이라는 점은 앞서 칸딘스키가 주창했듯이 ‘살아가고자, 만들고자 하는 지향점’에 다름 아니다. 국가라는 조직에서 점이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삶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인 것이다. 생각이 같은 사람(점)끼리 이어지다보면 하나의 선이 되고, 이러한 선들이 모여 큰 면을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런데 모든 국민이나 개인이 대통령 또는 리더와 생각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이상과 지향이 다르다 보면 어떤 점은 리더와 함께 선을 이루겠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있게 될 것이다. 이를 점의 단절이며 정치사회적 소외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소외된 점이 많다면 그런 사회를 건강한 국가, 튼실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점을 잇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단절되어 선이 되지 못하는 점들의 ‘생성’은 리더의 포용력과 배려심의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별적인 점들을 방치하는 것 역시 리더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선들의 조합체인 면의 이익에 다소 반하는 측면이 있더라도 외로운 점들을 껴안고 손을 내미는 것이 리더의 가장 큰 의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미용사회에 아름다운 면을 바라며>

눈을 돌려 우리 미용산업을 대표하는 최대 조직인 대한미용사회 중앙회를 보자면 도무지 점 선 면이니 뭐니 할 겨를 조차 없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임기 내낸 법정 다툼은 기본이고 중앙회장 자리가 공석이거나 외부인이 대리하는 일도 허다하다.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대의원 600여 명과 소권력의 이해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미용산업인들이 중앙회에는 관심조차 없다. 조직원들은 조직을 외면하고, 조직에서는 조직원들을 배려하거나 포용할 여력이 없는 듯하다. 이는 미용사회나 미용산업인 모두에게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현 상황은 굳이 따질 것도 없이 중앙회의 책임이 크다. 중앙조직뿐만 아니라 지회와 지부가 무기력한 모래알 미용사회를 만든 것이다. 의지 있는 미용산업인들은 절망의 미용사회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건강한 미용사회, 튼실한 미용사회에 대한 꿈은 결코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용사회가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 점들은 서로 이어져 선이 될 것이며 기어이는 모두가 바라는 아름다운 면을 만들어낼 것이다.


- 뷰티포스트 4월호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