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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트위터로 세상읽기] 카이스트 천재들의 자살에 대해
등록일 : 2011-06-13

로봇천재와 수학영재가 연이어 자살했다.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름난 카이스트(KAIST)에서 일어난 비극에 온 사회가 우울하다.학생뿐만 아니다.
유명한 생물학과 교수마저 목을 맸다. 트위터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버린 학생들을 애도하는
것과 동시에 카이스트와 이 학교 서남표 총장에 대한 비난의 트윗들이 폭주했다.
1971년 설립 이후 전액 장학금으로 운영되고 한국 과학기술계를 이끌며, 3만여 명의 이공계 학자, 벤처기업가, 기술관료를 배출한 국내 최고 대학 카이스트에서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기에 자살이 끊이지 않을까?

뒤처지는 순간 끝장이라는 공포

천재들의 죽은 뒤에는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이 강력히 추천한 ‘징벌적 등록금’제가 도사리고 있다.
징벌적 등록금제는 서 총장 취임이후 수립된 ‘카이스트 개혁안’ 중의 하나다.
카이스트 재학생은 원칙적으로 등록금을 내지 않지만 평점이 3.0이하로 내려가면 평점에 따라 차등적으로 등록금을 내야하는 제도이다.이 제도에 따라 그동안 등록금을 내지 않던 재학생 7천여 명 중 약 1천 명이 평균 254만원의 등록금을 납부하고있다. 이러한 징벌적 등록금제도는 전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해괴망칙’한 제도다.
“학점경쟁에서 밀려나면 패배자 소리를 들어야 하고 힘든일이 있어도 서로 고민을 나눌 여유조차 없다.카이스트는 행복하지 않다. 숫자 몇 개가 사람을 평가하는데 유일하고 절대적인 잣대가 됐다. 진리의 전당은 여기 없다”는 카이스트 학생의 절규에 대해 서 총장은 “미국의 명문대는 자살율이 더 높다” 고 간단히 말했다. 그가 교육자로서, 리더로서 자질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학생 네 명의 연이은 자살과 촉망받던 교수의 자살이 15년 이전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몇몇 일간신문의 사회면에 언급되었을 뿐 지금처럼‘경쟁 지상주의 사회의 비극’ 같은 전사회적 거대담론은 만들어 내지 못했었다.그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는 경제기적과 민주주의를 이룬 자부심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뒤처지는 순간 끝장’이라는 거대한 공포감에 둘러 싸여 있다. 잘나가던 사업가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다가 얼마 후 거리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소문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며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자’ 식의 생존 언어들이 우리 사회를 제어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카이스트 천재학생들의 자살은 머나먼 남의 동네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우리 가족의 이야기로 여겨진다.
자살한 학생의 죽음 앞에서 넋을 기리며 눈물 흘리기 보다는 ‘삶이 얼마나 힘든데 그깟 작은 경쟁조차 이겨내지 못하는 나약한 정신상태’를 운운하는 헛헛한 기성세대는,학생의 자살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더 큰 공포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분노와 눈물에 앞선 성찰 필요한 때

어느 사회에서든 젊은 세대의 미래는 권력과 지식,경제력을 선점한 기성세대에게 담보되어 있다. 그리고 젊은 세대는 높아져 가는 ‘정상인으로서의 살아가 기회’를 얻기 위해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한편, 패배에 대한 병적 두려움을 키워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 기성세대들은‘젊은 천재’들의 피 흘리는 생존경쟁을 느긋하게 즐기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그들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한순간의 패배를 ‘성공의 어머니’로 여길만한 여유마저도 빼앗은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자신의 권력을 영구히 독점하고자 한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카이스트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에 다름 아니다.경쟁에서 탈락하는 순간 지옥을 맛보게 되는, 패자부활전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뒤처지면 죽는,2011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카이스트 천재들의 자살 앞에서 우리는 분노하고 눈물을 흘려선 안된다.그보다는 우리 주위의 패배자 탈락자의 손을 잡아 이끌어 주는 포용이 우리의 분노와 눈물보다 더 값진 일일 것이다.

- 뷰티포스트 05월호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