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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트위터로 세상 읽기] 지저분한 프랑스, 잘 정돈된 서울 그리고 정의
등록일 : 2011-03-02

지저분한 프랑스, 잘 정돈된 서울
그리고 정의

트위터는 소란스럽다. 마치 100도씨를 막 넘긴 양은냄비의 물처럼 아침이고 저녁이고, 심지어 세상이 잠들어 있는 심야에도 수 만 명의 트위터러들이 자신의 고민과 생각, 조언들을 140자로 담아낸다.
트위터에서 팔로워(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다양하다. 맛난 점심 먹은 후에 직장상사에게 ‘깨져서’ 체한 이야기도, 대기업 CEO의 맘에 들지 않는 직원 눈치 채지 못하게 골탕 먹이는 방법도, 어느 응급환자 가족이 희귀한 혈액을 찾는 다급한 목소리도, 설치류가 어떻고 양서류가 어떻다는 정치이야기도, 전국 곳곳의 땅값 집값 변동 추이까지… 그야말로 소재를 불문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초 단위로 쏟아진다.
이렇듯 문자와 사연의 홍수 속에서 자신이 듣고 싶은, 또는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골라내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한두달 트위터에 접속하다보면 제법 익숙해져서 ‘세상엔 스승이 차고 넘치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G20 개최와 그 의미

지난달 트위터에서 최고의 화제는 역시 ‘G20'이었다. 지구촌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20개 국가의 정상들이 서울에 모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품격 높은 행사’라는 정부의 발표에 걸맞게 신문과 방송, 심지어 온갖 광고에까지 G20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문구들로 도배되었다. 주요 거리엔 차가운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꽃들로 장식되었고 매일 몇 번씩이나 아스팔트는 샤워를 해야 했다.
전국에서 모인 경찰뿐만 아니라 군대들도 G20이 열리는 서울 삼성동과 각국의 정상들이 하루이틀 묵는 호텔주변에 상주하는가 하면, 감이 떨어지지 않게 철사로 감나무를 칭칭 얽는 일도 있었다. G20이 열리는 11월 11일부터 ‘1박2일’ 동안 서울은 그야말로 깨끗한데다 잘 정돈된 ‘모범도시’처럼 보였다. 이러한 노력은 모두 ‘대한민국 국격’을 높이기 위한 일이라 했다.
반면, G20으로 인해 불편과 손해를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행사기간을 전후해 일부 지역의 노점상들은 장사를 하지 못했으며, 행사장 일대의 모든 미용실, 식당 등은 문을 닫아야했다. 심지어 공개구혼을 하던 어느 청년이 경찰서로 연행되는 일도 있었다.
G20이라는 국제적 행사를 두고 트위터에서는 ‘야단법석이다’ ‘요란하다’ ‘소문난 잔치다’ 등등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다. 따지고 보자면 G20에 참여한 대다수 국가들은 인류역사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 살육을 저질렀던 침략과 전쟁의 주범들이다. 더불어 지구촌 경제위기의 주범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국가들이 모여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코메디’라는 트윗도 상당했다.
프랑스에서는 올해 내내 파리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시위의 사연이야 다른 나라 일이니 제쳐두고, 매일같이 주요 도심에서 고등학생부터 장년들까지 과격시위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차량은 불타올랐으며 주요 거리의 유명 상점들은 파괴되었다. 프랑스를 찾은 외국인들은 때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기도 했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캐나다 토론토에서 지난 6월에 G20이 열렸었다. -아! G20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몇 년에 한 번이 아니라 1년에 2번 회원국들이 돌아가며 개최한다-
프랑스와 캐나다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간단하다. 시위와 집회로 얼룩진 프랑스, 우리와 같은 G20을 개최한 캐나다…. 과연 그들 나라에 대한 ‘국격이 높아지거나 낮아졌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를 위해서다. G20개최만으로 국격이 급상승할 것이라는 정부의 호언에 대한 답은 시민 스스로 찾고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올해 한국 출판계 최고의 히트작인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불과 5개월 동안 수십만 부가 팔렸다.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정의’와 ‘공정’으로 가득하다. 반증을 따지자면 그만큼 대한민국은 정의롭지 못했고, 공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란 무엇인가? 딱 몇 문장으로 규정하지 못하겠지만,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는 책과 경구가 있다.
플라톤이 지은 <국가론>의 부제는 ‘정의에 관하여’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 아닌 약자의 이익이며, 진실의 지배자는 자신의 이익이 아닌 피지배자의 이익을 추구한다’라고 설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