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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트위터로 세상 읽기] '소셜네트워크 혁명'
등록일 : 2011-03-11

'소셜네트워크 혁명'
대통령을 쫓아내고 피자회사를 바꾸다!

충격적인 소식이 있다. 30년 동안 이집트를 장기집권하며 독재를 일삼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났다. 지긋지긋한 독재 아래에서 신음하던 이집트 민중은 이제 무바라크 대신에 마브로우크(Mabrouk. 축하)를 외치고 있다. 그들이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무바라크 OUT!’ 을 외친지 18일만의 일이었고, 이웃나라 튀니지에 이은 두 번째 ‘소셜 네트워크 혁명’이었다.
그런데 이집트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축출한 일련의 과정을 세계인은 왜 ‘소셜 네트워크 혁명’이라고 부를까? 과연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한 국가의 지도자를 퇴진시키는 혁명을 완수할 만한 능력이나 잠재력이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YES!'이다.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 초기에 무바라크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을 공유하고 시위를 조직했던 것은 페이스북이었다. 수많은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페이스북의 유용한 기능 중 하나인 ’그룹‘을 만들었고, 이 그룹을 통해 온라인에서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페이스북 온라인 조직들은 정보공유와 기획과정을 거쳐 시위의 장소와 시간을 약속했고 다발적인 오프라인 시위를 벌였다.
페이스북에 의해 조직된 시위의 정보들은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가득 채웠고 수많은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을 시위에 참여하게 했다. 페이스북 그룹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트위터를 통해 퍼졌고 결국 100만 명에 이르는 시위 참가자를 만들어낸 셈이다.
한편 이집트 타흐리르광장에서 경찰의 총격 등으로 3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수천 명이 연행되거나 납치되는 과정 역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살해 위협 때문에 유수의 언론사 기자들이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시위대의 활동이나 피해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트위터와 페이스북 사용자의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실시간 전송되었던 것이다. 공포와 희망으로 범벅된 140자의 문자뿐만 아니라 경찰의 총격에 의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시위대의 사진과 동영상들은 비단 이집트인과 중동 지역인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공분을 샀다.
이집트정부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물리적으로 시위대를 봉쇄했지만 시위대에겐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있었고 기어이 대통령을 쫓아냈다.
이집트의 소셜네트워크 혁명이 대통령을 무바라크 대통령을 축출하는 성과를 거두자 바레인, 리비아, 이란 등 인근 국가에서도 비슷한 민중봉기가 시작되었다. 소위 아랍동맹에서 소셜네트워크 혁명의 벨트가 성공적으로 거행될 지는 미지수이지만, 분명한 것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게 물리적인 장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잡고 어울릴 준비됐나요?”

튀니지와 이집트 등 중동국가에서 소셜네트워크 혁명이 들불처럼 일어날 때 서울에서는 ‘작은 사고’가 있었다. 피자를 배달하던 청년이 시내버스와 충돌해 사망한 것이다. 이 피자배달원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아르바이트로 힘들게 입학금을 마련해 대학 입학을 앞둔 젊은이였다.
아르바이트 피자배달원의 죽음은 트위터에 파동을 일으켰다. 소위 ‘30분 배달제’를 앞세운 피자회사의 마케팅 때문에 오토바이를 과속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이 널리 알려지면서 트위터에서는 해당 피자회사에 대한 비난과 불매운동이 폭주했다.
트위터리안들은 불매운동뿐만 아니라 해당 피자회사를 찾아가 1인 시위를 하거나 트위터와 페이스북 이용자의 ‘30분 배달제' 반대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반응해 피자회사들은 30분 배달제를 모두 폐지했다.
독재에 저항한 혁명과 피자 배달원의 죽음에 대한 직접 행동 사이의 공통점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리고 ‘주변의 불행에 대한 분노와 공동체에 대한 선의의 직접행동’이라는 소셜네트워크 정신이 있다.
지난번에도 언급했듯이 소셜네트워크는 진보적이며 변혁을 추구하는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다. 소셜네트워크의 속성인 ‘다른 이와 의견을 누누고 소식을 궁금해 한다’는 것은 ‘지금보다 나은 현실’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최근 업계에서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폐쇄적인 사유, 상대적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소셜네트워크를 제대로 활용하기 힘들다.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서 손잡고 어울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소셜네트워크의 무진장한 ‘이익’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될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혁명과 피자배달원의 죽음을 보며 공감하거나 공분하는 한편, 지금 자신이 사유하고 있는 절대적 권력의 가치와 주변인들의 불행을 함께 나누는 행동을 당장 시행하는 것이 ‘소셜네트워크人’으로 살아가는 올바른 자세이다.

- 뷰티포스트 3월호 발췌